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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필의 서두 쓰기 요령

by 미루me 2014. 3. 24.

 

수필의 서두 쓰기 요령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다. 수필처럼 원고지 15매 내외의 지면에 승부를 걸어야 할 때 시작의 비중은 그만큼 커진다. 첫인상이 일생을 좌우한다고도 한다. 수필처럼 주로 생활의 실감에서 소재를 선택해야 되고 평범 가운데 비범을 발견해야 하는 글일 때 서두는 개성이 있고 신선감이 있어야 한다.

 

수필의 서두를 어떻게 써야 한다는 원칙이나 제한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서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주제와 소재가 정해지고 구성까지 다 끝내놓고도 일성을 터뜨리지 못해 붓이 정지해 있을 때 서두를 끌어내는 방안을 강구해 보자.


1) 서두의 중요성

 

"첫 센텐스, 그것은 내 창작에 있어 거의 전부다." 인생파 작가 계용묵 씨의 말이다. 샴페인도 마개가 잘 뽑히면 술맛이 좋다. 선보일 때도 첫인상이 좋으면 거의 성공한다. 출발은 종말을 예언하기 때문일까, 시작은 모든 일의 반이기 때문일까? 우리 나라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 또한 수필에도 해당되는 적절한 말이라고 여겨진다. 왜냐 하면 서두는 바로 독자를 이끄는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서두는 발단에 해당되어진다. 

 

이 서두가 잘 풀리면 그 수필은 시종여일하게 잘 풀려나간다. 이는 실제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체험하게 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기실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이 서두를 끄집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체험했음이 아닌가.

서두는 도입 단락에 해당한다. 도입단락은 전체 글의 첫머리에 놓이는 단락이다. 전체 글의 문을 여는 구실을 하므로 본격적으로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전개에 들어가기 전에 읽는 이의 관심을 끌거나 전체 글에 대한 예비적인 서술을 하게 된다. 이런 예비적, 입문적 구실을 하는 것이 도입 단락이다. 글에 따라서는 도입 단락이 없이 바로 일반 단락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그런 글에서라도 대개 한두 문장 정도 글의 문을 여는 구실을 하는 문장이 있기 마련이다.

 

서두 즉 도입 단락의 기능은 두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글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체 글의 내용을 개관하는 것이다. 전자는 주로 수필에서 많이 쓰는 것으로 글의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읽는 이의 궁금증을 자극하여 글을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후자는 설명적 에세이에서 전체 글의 내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구실이다. 전체 글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포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읽는 이들이 원하는 내용인가를 쉽게 파악하도록 돕는 기능을 수행한다.

 

윤오영은 이 서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글은 '시작이 중요하다. 첫머리 한 마디가 전편을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고 전제하고 '서두에 설명이나 서론을 늘어놓지 말 일이다. 그것은 극히 문장의 정서를 죽이고 청신한 기분'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될 수 있는 대로 긴 허두를 붙이지 말고 간명하게 시작하되 전편에 대한 암시적인 기틀이 되도록 유의하고 이론적인 말을 피해야 한다. 한 마디로 해서 느낀 대로, 직접 써 나가면 된다. 이러저리 만들어 보려는 데서 잡치는 것이다.


결국 서두는 느낀 대로 암시적인 기틀이 되도록 함이 무리 없는 시작이 됨을 제시한다. 그럼에 서두는 수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함도 그 소이가 여기에 있게 된다. 어떤 글이든 서두가 있고, 독자는 서두에서부터 읽어 들어간다. 서두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첫 번째 관문이다. 신문 칼럼을 읽는 사람 중에는, 서두와 중간과 끝 부분만 읽는다는 사람도 있다. 전문을 이해하는 데에 서두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두는 작품을 좌우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소재를 만난 사람의 머리 속에는 쓰고자 하는 말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다.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써야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아무 데서나 시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서두가 독자를 끌어들이게 할 것인가에, 서두의 중요성이 있다. 이 중요성을 땅을 비집고 솟는 싹의 떡잎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한 속담을 인용한 말이다. 나그네의 갈림길 같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갈림길에 들여놓은 발길의 향방에 인생길이 달라지듯, 수필의 서두도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2) 서두의 요령

 

서두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는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취향과 개성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하나의 나무를 보고 쓴다고 하자. 이때의 서두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나무를 보게 된 동기에서 시작할 수 있고, 나무가 서 있는 입지적 조건이나 나무의 모양, 또는 주위 환경 상황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서두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의 한 부분이다. 동기부터 쓸 수도 있고 결론부터 말할 수도 있다. 대상을 순서적으로 시작할 수도 있고, 중심부분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수필은 서두의 제시 방법에 따라 작품의 성공이 좌우된다. 제시 방법이란 표현 방법을 뜻한다. 말하자면 신선미가 없이 진부한 설명적 표현이거나, 걸러지지 않은 감정의 노출이거나, 독자에게 강박감을 주거나 하는 따위이다. 서두는 차분한 말로 정적 분위기를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체나 형식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경수필의 경우는, 서두의 목소리가 높아서는 아니된다. 요구하거나 교훈적이거나 설교적이어서도 성공적인 것이 못 된다.

 

서두의 표현에는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불분명한 인상을 주지 않는 일이다. 이를 테면 첫 구절 시작이 지시대명사 '그'니 '어느'로 시작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대명사의 시작은 막연한 상황을 말하는 격이므로, 사실 개념과 떨어져 실감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독자를 끌어들이기에 효과적이 아니다. 다음은 1인칭 대명사 '나'로 시작하는 경우이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서두에 붙는 '나'는 군더더기일 경우가 있다. 수필은 문장 주체가 이미 '나'이다. 그러므로 '나'가 붙는 것은 서두에서나 내용에서나 군더더기일 때가 많다. 다만 예외인 경우는 작자 자신을 강조해야 할 때다.

 

'그' 라던가 '어느' 따위로 시작되는 것은 수필의 본질에서도 벗어난다. 작자가 주체가 되지 않는 형식 이를 테면 논설체 같은 경우가 아니면, 수필에도 육하 원칙 같은 것이 요구된다. 작자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따위다. 막연히 지시대명사 '그'로 시작하는 것은 처음부터 원칙에서 벗어난다.

 

개성적 매력의 들머리에 표현기교를 모으는 게 예술문이라면, 내용전달에 초점을 두는 일반 문장에선 본론으로의 효과적 유도가 더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어쨌든 서두에서 흥미와 주의를 일으켜 놓고 중간에서, 그 흥미와 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케 하고 마무리에서, 운치롭고 인상적으로 마치게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수필문에 붙여지는 주의사항이다.

 

해외문학파의 한 사람이고 만연체 문장의 수필가인 김진섭 씨는 "문장은 발단의 예술이다"고 했고, 희곡 <<벗꽃동산>>으로 유명한, 러시아 비판적 리얼리즘 최후의 작가 체홉은 "대부분의 작가가 작품에서 실패하는 것은 처음과 끝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였다.


(1) 그 글에서의 서두는 그 한 문장뿐이다.

그 한 문장을 찾을 일이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의 주장이 수필의 서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명수필의 작가에게서 듣는 '서두 한 줄을 찾는 데 피나는 산고의 아픔을 겪었다'는 고백을 자주 듣는다. 한흑구는 <나무>라는 수필을 쓰는 데 5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며,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는 서두글을 찾았다고 한다. 역설적이지만, 플로베르의 말대로 거기에 꼭 알맞은 한 마디를 그는 5년 만에 찾았던 것이다.


(2) 중심사상을 보다 구체화한다.

중심사상이란 그 글의 주제의식으로서 몸에 배태한 생명체와도 같은 것이다. 몸에 밴 생명도 열 달이 차야 산기를 느끼는 것처럼, 그 산기와도 같은 글의 서두도 의식의 구체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짐으로써만 가능하다. 안병욱의 수필 <인생은 예술처럼>에서의 "사랑은 하나다."라든가, 피천득의 수필 <순례>에서의 "문학은 금싸라기를 고르듯이 선택된 생활경험의 표현이다."라는 문장들은 모두 중심사상의 핵을 앞세운 예의 서두다.


(3) 비유, 암시적인 문장이 효과적이다.

수필은 대우적인 문학이면서도 직접성을 피하여 완곡하게 우회하는 은근성을 체질로 한다. 이것은 보다 효과적으로 독자의 이해와 공감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단순구성의 수필에서는 대개 완만하거나 겸손한 문장으로 출발하여 말미에 가서 그 주제의 핵을 일반화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시간적 순서를 밟지 않고 전개하는 병렬식 구성의 수필에서는 글의 서두에 예민한 신경을 쓰게 된다. 즉 직유나 은유의 문장으로 거의가 서두부에 주제의 핵을 상상처리하는 두괄식의 문장이 오게 된다.


(4) 난해하거나 추상적인 문장은 피하는 게 좋다.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외래어나 시문의 구절들, 또는 전문적인 용어들을 앞세우는 경우가 있다. 피할 일이다. 호기심이나 기대감의 유발보다는 오히려 이질감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켜 독자를 밀어내는 결과가 된다. 추상적인 문장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념이나 관념이 글머리에 설 때, 대개는 친화감을 잃게 되어 호소력과 설득력을 잃게 된다. 때문에 수필의 서두는 '첫인상'으로서의 '선명성'을 잃지 말아야 하고, '예보적 기능'으로서의 '암시성'을 생명으로 해야 한다.


(5) 제목에 대해 배려한다.

서두는 제목과 더불어 한 눈에 들어올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러므로 일단 제목에 매력을 느낀 독자가 한층 더 흥미를 느끼도록 배려하는 것이 좋다. 만약 한여름의 절전을 위하여 대통령이 남방셔츠 차림으로 집무하는 모습을 텔레비젼을 통해서 보고,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경직된 우리 사회 지도층을 꼬집는 글을 쓰고자 할 때, 그 글의 제목을 <대통령의 넥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수필의 첫 문장을 '대통령이 넥타이를 풀었다'라고 시작하면, 첫 문장이 제목을 반복하는 꼴이 되어 긴장감이 떨어진다. 따라서 서두 첫 문장을 적을 때는 항상 제목을 배려해서 표현하는 게 좋다.


(6) 결미와 조응되게 해야 한다.

서두는 글 전체를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글의 분위기나 주제의 무게, 소재의 성격에 따라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한다. 그러므로 주제에 접근하는데 어떤 암시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다. 결미와 자연스러운 조응은 주제가 강조되고 감흥을 더해 줄 것이므로 본문을 거쳐 결미에 닿는 흐름에서 동떨어지지 않는지를 살펴야 한다.


(7) 교조적인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독자는 자존심이 강하고 싫증을 잘 낸다. 진부한 설명이나 교훈으로 독자를 가르치려는 의도를 보이거나 저속한 표현이나 꼭 필요하지 않은 외래어 사용도 거부감을 준다. 독자를 가르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고사나 명구의 인용은 참신하지 못하고 개성적이기 어려운 반면 내용이 반전되면 절정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유머와 위트로 파격을 주는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3) 서두의 유형

 

처음과 끝은, 문장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알파요, 오메가인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을 잘 쓰는 데에는 여러 가지 주의할 점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첫머리를 잘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첫인상이 중요한 것과 똑같은 이치다. 서두의 기법은 학자에 따라 각양 각색이다. 필자는 대원리 2가지와 소원리 20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오직 중요한 것은, 읽힐 문장의 서두는 재미, 새로움, 감명 중 그 한 가지는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재미'는 호기심의 사촌이다. 담 너머 사과가 가장 달다고 했다. 재미가 있을 문장인가 아닌가를 첫 석 줄에서 판단하려고 한다. 남의 집 불 구경 않는 군자가 없다는 것은, 도덕보다는 흥미에 더 많이 지배당한다는 인간 속성을 꿰찌른 말이다. '재미' 그것은 가장 확실한 유도책이다. '새로움'도 '감명'도 '재미'의 별명에 불과하다.

 


( 다음 지식인에서 모셔온 글 )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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