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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낙산 성곽 길

by 미루me 2011. 12. 22.

동대문에서 단 20분 걸었는데… 몽마르트르 안부럽다

낙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서울 낙산 성곽길 야경. 흥인지문(동대문)부터 이어진 성곽은 고풍스러운 곡선을 그리고, 그 뒤로 남산 N서울타워와 도심에서 내뿜는 불빛이 밤을 밝히고 있다.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ydw2801@chosun.com

날씨가 포근하고 상쾌한 봄·가을과 달리 추위가 심한 겨울에는 높은 산을 가기가 망설여진다. 이럴 땐 도심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성곽길을 걸어보자. 옛 성곽은 능선을 따라 놓여 있어 짧은 시간 올랐을 뿐인데도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지난 16일 오후 찾은 서울 낙산 성곽길도 그런 곳이다.

시대별로 층층이 쌓아놓은 돌덩이

출발지는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동대문역. 1번 출구를 나와 뒤를 돌아 80m 정도 걸으면 '동대문'이라 불리는 흥인지문(興仁之門) 맞은편으로 '낙산공원 1.2㎞'라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화살표 방향을 따라 뻗어 있는 길이 서울 낙산 성곽길의 입구다.

낙산(駱山). 현재 종로구·동대문구·성북구 등 3개구가 만나는 이 산은, 그 모양이 낙타의 등과 같다 하여 낙타산(駱駝山)이라 불리다 말을 줄여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옛 한양도성에서는 서쪽의 인왕산(仁旺山)에 대치되는 동산(東山)이기도 했다.

낙산을 오르는 초입은 왼편에 펼쳐진 성벽만 제외하면 그냥 평범한 동네 골목 느낌이다. 붕어빵 장수가 서 있고 사람과 자동차가 뒤섞여 있는 길이 500m 넘게 펼쳐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점점 초록빛을 머금은 나무와 풀이 늘어나는 게 느껴진다. 본격적인 성곽길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서울에는 낙산·북악산·인왕산·남산 등 총 4군데 성곽길이 있지만, 그 중 낙산이 시대별로 성곽이 쌓여진 역사를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메주 모양의 돌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맨 아랫부분은 조선 태조 때 쌓은 것이고, 크고 기다란 돌을 받쳐놓은 부분은 세종 때의 것이다. 정방향으로 다듬어진 큼지막한 돌은 숙종 때 축조한 것이다. 조선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축성술(築城術)이 한데 어울려 있는 공간인 셈이다.

성곽길을 따라 걷다 보면 흥미로운 구멍 3개를 만날 수 있다. 암문(暗門)이라 불리는 일종의 '토끼굴'이다. 옛 성곽에는 적에게 노출되지 않을 후미진 곳에 비상시 군수물자를 조달하거나 비밀리에 군사를 이동시킬 목적으로 이 같은 암문을 만들어놓았다. 이 문을 통과하면 성곽 동쪽과는 다른 아기자기한 길이 펼쳐진다.

①낙산공원에서 이화동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에 하얀 꽃이 그려져 있다. ② 낙산성광길 산책로
야경이 아름다운 '서울의 몽마르트르'

성곽 서쪽 길은 동쪽 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10분 남짓 오르막길이 펼쳐지는데 걷다 보면 공기가 맑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 서울 도심 한복판 동대문에서 단 20분 올라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광이 좋다.

산 정상에서 주택가로 내려가면 곳곳에서 아름다운 벽화들을 만날 수 있다. '이화동 벽화골목'이라 불리는 이곳에서는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남녀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가파른 계단에 그려진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패션 잡지 모델이 된 듯하다. 우스꽝스러운 벽화 옆에서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도 좋다. 흔적도 없던 동심(童心)이 벽화 앞에서는 되살아 온다.

'이화동 벽화 골목' 위로 놓인 낙산 공원은 낙산 성곽길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다. 예술가들은 없지만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서울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 불리는 곳이다. 봄이나 여름엔 데이트하는 젊은 연인들로 붐비는 곳이면서, 서울에서 야경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침 이곳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오후 5시 20분. 해가 저무는 시간이었다. 대학로 방향에서 먼저 붉은 기운이 올라오더니, 남산과 북악산까지 노을로 물들었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석양이 부럽지 않은 장관이었다.

땅거미가 지면 기온은 더 떨어지지만, 낙산 공원의 장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서울 시내 건물들이 하나씩 불을 밝히고, N서울타워(남산타워)도 번쩍번쩍 화려한 빛을 내뿜는다. 어느새 뒤를 돌아보면 성곽을 따라 은은한 조명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