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_ 최 영 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만남, 사랑, 이별, 그리움은 시의 주제로 너무나 흔한 것들입니다. “흔하다” 라는 것은 누구나 겪는 삶의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그 “흔함”이 남들이 보기에는 통속적이겠지만, 겪는 당사자에게는 많은 의미를 발생시킵니다. 그래서 수많은 시인들이 이 주제를 다루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흔한 주제로는 웬간한 감정의 밀도와 표현의 미학을 없이는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쉽지 않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그 특유의 예민한 시적 촉수로 독자의 감성을 건드립니다.
선운사는 전북 고창에 있는 한 사찰입니다. 동백꽃으로 유명하다는데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한번 가보기는 해야할 거 같은데 여행에는 별로 취미가...
시인은 지금 선운사에 있습니다. 그 유명한 동백꽃을 보러 왔는데 조금 늦었나 봅니다. 동백이 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 이런... “그때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 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가볍게, 서로의 미래를 축복해주며 웃으며 헤어졌는데. 이별 앞에서 신파(新派) 안만들려고 쿨하게 헤어졌는데. 그래서 쿨하게 잊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잊어도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의 빈 틈을 타 그 사이를 비집고 그 사람이 떠오릅니다. 끈질긴 이눔의 정(情)이여...
이 시의 압권은 단연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입니다. “꽃이 / 지는 건 쉬워도 / 잊는 건 한참이더군 / 영영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이 한 말이, 겉으로는 쿨한 척 하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시인의 절절한 마음을 그대로 전해줍니다.
여자로서의 자존심과 아직 그를 잊지 못한 감정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여성성(女性性)을 풍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 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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