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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나의 이야기

유산

by 미루me 2014. 4. 1.

 

 

                                                                             시어머니의 유산

                                                                                 한 정애

 

  자명종이 따로 없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가 단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눈을 비비며 베란다 창문을 열면 밤새 새로운 꽃들이 뾰족이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건넨다. 하루 일을 화초를 돌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시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화초기에 어쩔 수 없이 물려받아 키우게 된 게 대부분이다. 어머니는 죽어가는 식물도 살려내는 재주를 가졌다. 버려진 화초를 가져와 상처 난 곳을 다듬고 잘라낸 다음 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아침마다 화초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순이 돋고 꽃을 피운 화초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게발처럼 줄기가 옆으로 뻗어 간다고 해서 게발선인장, 겨울이면 하얀 꽃을 피우는 화월과 꽃 기린은 가장 오래된 식구다.

  화초를 볼 때마다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자기 죽음을 예견이라도 했는지 봄이 되면 새순이 돋고 꽃을 피우는데 새로이 싹이 돋아나듯 내 병도 나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뇌졸중으로 병이 깊은지라 식구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고 끝내 새봄을 맞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화초를 볼 때마다 그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갈팡질팡했다. 화초 키우는 일이 익숙지 않을 때라 무거운 짐처럼 떠안게 되었지만, 키우다 보니 재미를 들이게 되었다. 분홍색 꽃이 아름다운 패랭이, 종이처럼 바스락거린다고 해서 종이꽃, 보랏빛 매 발톱, 꽃 중에 으뜸이라는 금낭화를 거실로 들여놓았다. 꽃을 피운 화초들은 집안 식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처음부터 잘 키웠던 건 아니다. 물을 제때 주지 않아 시들거나 온도를 맞추지 못해  얼어 버리기 예사였다. 종류에 따라 적절하게 물 주기와  적당한 온도와 햇볕. 바람. 세 박자가 맞아야 탈 없이 잘 커는 것 같다조금만 방심하면  벌레가 생겨 가장 성가시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어쩌다 죽기라도 하면 식구들 눈치를 보게 된다. 화초를 보며 어머니를 생각하는 식구들 때문이다 

  몇 해 키우다 보니 화분 관리 하는 것이 시들해졌다. 꽃을 보는 즐거움은 있지만 집을 비울 수 없는 게 흠이었다. 물을 자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 집을 비운 뒤 돌아와 보면 그사이를 견디지 못하고 너부러져 있다.

 몇 해 전부터 전자파를 막아준다는 다육식물에 마음을 빼앗겼다. 물을 자주 줄 필요가 없으니 키우기가 훨씬 수월했다. 잎사귀마다 싹이 돋아나 식구가 금방 늘어났다. 다육이도 야생화 못지않게 고운 꽃을 피워 키우는 재미가 솔솔 하다.

  주변에서 화원을 하라고 할 만큼 잘 키운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이웃에서 올 때마다 하나씩 가져가지만 시들어 버린다며 다시 가져가기를 반복한다. 식물도 사람과 같아서 목마르면 물을 주고 상처가 나면 약을 발라준다. 가끔은 긴 머리도 잘라주고 집이 좁으면 화분 갈이를 해 주어야 잘 자란다. 사람처럼 식물도 주인의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고 한다. 꽃을 피우면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봄 햇살에 붉게 물든 다육이 모습이 아름답다. 겨우내 꽃을 피우는 게 발 선인장은 식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매년 꽃피우던 화월은 올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삐죽하게 키만 크는 것 같아서 내버려 두었더니 잎이 까칠하고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어 식물 영양제라도 주어야 할 것 같다.

 짐처럼 떠안은  화초지만 지금은 집안에 소중한 보물로 자리 잡고 있다. 화초를 키우면서  애를 태운 날도 있었지만 얻은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았다지금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화초처럼 우리 가족의 뿌리도 튼실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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