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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나의 이야기

회나무 집

by 미루me 2014. 10. 14.

                                      회나무 집

 

                                                                          한 정 애

 

  큰집을 두고 사람들은 회나무 집이라고 불렀다. 오래 되고 키가 큰 회나무는 할아버지의 내리사랑만큼이나 커다란 그늘과 많은 것을 주었다.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다 덮을 만큼 넓은 나무 아래에는 이웃 어른들의 이야기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큰집을 수시로 드나들던 내게는 그 나무아래는 놀이터요, 이웃 사람들의 들고남을 다 지켜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봄날의 화려한 꽃 잔치가 끝나고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나무는 눈 같은 꽃을 피웠다.   

  회나무는 길상목이라고 하던가. 할아버지는 자손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가문이 번창하고 장차 큰 인물이 나거나 제 앞가림은 제대로 하는 자손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만, 할아버지의 집안과 자손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회나무의 꽃과 열매를 말려서 약재를 만들었다. 나는 어리지만 할머니를 도와 꽃잎과 열매 말리는 일을 했다. 다른 약재와 섞은 환약은 효험이 좋았는지 소문을 듣고 회나무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환자들을 대하는 할아버지의 태도는 언제나 따뜻했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자손들의 성공을 열망하며 회나무를 심었던 할아버지는 가문의 영광도, 자손들의 성공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가 약재를 만들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처방해 주기도 했다. 시골이지만 세월의 변화로 민간요법을 믿고 찾아오는 사람이 자연히 줄어들었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족 그 누구도 약재 만드는 법을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기도 한다.

  언제까지 우리 집안을 지켜줄 것 같았던 회나무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몇 해 지나지 않아 태풍에 쓰러졌다. 우리들 마음속에 언제나 같이 있어 할아버지처럼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 나무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자 집안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회나무가 서 있던 자리를 볼 때마다 걱정을 안고 다녔다.

  그 무렵,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큰집 둘째 오빠가 농사를 지어 보겠다며 식구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 농사일에 가끔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차츰 재미를 붙여 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친구와 놀러 간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버스와 충돌하였다.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달려갔을 때는 오빠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젖먹이 딸과 겨우 걸음마를 하는 아들을 두고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났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 집에도 우환이 찾아왔다. 남동생이 사고를 당하여 뇌사 상태로 여러 해를 보냈다. 오랜 병원생활을 했지만 결국 가족들 곁을 떠났다. 같이 있었던 동료나 친구들에게 이유를 물어보아도 계단에서 넘어져 다쳤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의 소원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차도가 없자 병원생활을 정리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과 작별했다. 그 뒤에도 집안의 가지가 하나씩 잘려 나가는 변고와 사고가 이어졌다.

  연이은 사고에 극도로 예민해진 집안 어른들은 조상을 달랜다며 굿을 하고, 점쟁이를 찾아가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할아버지 산소가 문제로 불거졌다. 할아버지 생전에 자식들에게 묻힐 자리를 봐 두었으니 거기다 꼭 묻어달라며 자리까지 보여주며 부탁을 했었다 한다. 장례식 날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풍수의 말만 믿고 그곳에서 조금 비껴난 곳에 산소를 섰다고 훗날 큰아버지가 말했다. 또한 그 자리는 큰 인물이 묻힐 자리에 산소를 써서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동안 흉흉한 이야기가 번져 나갔지만 폭풍우가 잠잠해지면서 어둠의 그림자도 조금씩 벗겨져 나갔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저미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하나씩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상처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우리 집일 게다. 남동생을 낳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만 그 아들 때문에 힘든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회나무에서 많은 것을 얻기도 했지만 나무가 쓰러지고, 그 나뭇가지가 부러지듯 자손들이 하나씩 부러져 나갔다. 가문의 번창함과 자손들의 성공을 열망하며 회나무를 심었지만 나무가 쓰러지면서 상처로 가득한 세월의 연속이었다.

  할아버지의 바람은 많은 것을 잃고 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당시 대학 다니는 큰손자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대학만 나오면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공들였던 큰손자는 지금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되어 있다. 증손자는 약관의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활약하고 있다. 오토바이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증손자는 국내 프로배구단에서 선수로 뛰며 꿈을 키우고 있다. 나머지 자손들도 제 자리를 지키며 흔들림 없이 잘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흔들리는 바람에 자손들이 다치고 그 후유증으로 아픔을 삭이는 시간이 길었다. 세월의 바람 앞에 쓰러진 회나무처럼 우리 집안에도 많은 상처가 있었다. 아직도 그 상처가 다 아물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바람에 흔들리며 부러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회나무 같이 품 넓었던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어린 날처럼 우리의 웃음소리를 조금씩 찾아가는 일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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