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나의 이야기

길 위의 사람들

by 미루me 2012. 4. 30.

 

                                                                               길 위의 사람들

 

                                                                                                                                                                한 정 애

 

대전에서 생활하는 아들을 만나기 위하여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대합실이나 광장 쉴만한 곳은 대부분 노숙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명당자리로 기차역 대합실을 꼽는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광장에는 자선 단체에서 나온 밥 차가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노숙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지나가다 밥 차를 보고 오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반찬이래야 국과 몇 조각의 김치가 전부였지만 밥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받아든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가득했다.

파산으로 빚쟁이를 피해 집을 나왔거나 가족이 해체되어 집으로 갈 수 없는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종일 벤치에 앉아 있거나 오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판 돈 50억을 가진 사람이 집도 없이 노숙생활을 한다는 기사가 사회면을 장식했다. 그가 알려지게 된 데는 돈이 든 가방을 잃어버려 경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손 벌리는 사람들을 피해 노숙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도 걸인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농사를 짓기는 했어도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사흘이 멀게 찾아오는 걸인들에게 배부르게 밥을 주기란 쉽지 않았다. 주로 셋이나 넷이 패를 지어 오거나 가족끼리 헛간이나 양지바른 길옆에서 며칠씩 묵어가기 예사였다. 동네 잔칫집과 초상집이 있는 날은 걸인들의 발길이 잦았다. 여자나 아이들이 지나가면 힘을 과시하며 위협을 하기도 했다. 걸인에게 쫓겨 혼이 난 일이 있었던 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숨거나 방문을 잠그고 눈앞에서 멀어질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어느 초여름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이는 남자아이 혼자 동네에 들어왔다. 친구네 외양간에 자리를 잡은 뒤 밥을 얻으러 이집 저집 기웃거리고 다녔지만 배를 채우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며 또래 아이들이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가끔은 놀이에 끼워주기도 하였다. 해가 지면 볏짚이나 거적을 이불삼아 한기를 달랬다. 날이 지나도록 기가 죽었고 동네 아이들과 시비가 붙은 날은 외양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끼니를 굶을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양간을 지나가다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련을 일으키는 아이를 보았다. 어디 아픈지 물어봐도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에게 달려가 “외양간에 있는 애 죽으려는지 벌벌 떨고 있다”고 말하니 물에 만 밥을 들고 와 떠 먹여 주며 뭐라고 하셨다. 먹을 것이 들어가서 그런지 마음을 달래줘서 그런지 한참 지나자 몸을 뒤틀던 경련도 멈췄다. 그 후로 때마다 끼니를 챙겨 주시며 동네 아이들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살피셨다. 며칠 뒤 기운을 차리고 조금씩 움직이며 밥을 얻으러 다녔다.

며칠 뒤 동네에서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외양간을 살펴보니 누운 자리만 패인 체 남아 있었다. 할머니에게 외양간에 살던 애 안 보인다고 하였더니 “잘 사는 동네로 갔겠지” 라고 하셨다. 무서웠던 기억 때문에 걸인만 보면 도망부터 쳤던 나였지만 그의 모습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광장 한쪽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관객은 밥 차에서 허기를 면한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웃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폐 몇 장 모금함에 넣는 것으로 책임을 면하려고 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보다 주변을 둘러보고 배고프고 마음을 다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우리들의 몫인 것 같다. 크게 남을 도우려고 하기보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가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룹명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나무 집  (0) 2014.10.14
유산  (0) 2014.04.01
그리움  (0) 2011.10.15
불행한 베이비부머 세대  (0) 2011.09.22
위를 튼튼하게하는 음식  (0) 2011.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