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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복절도

by 미루me 2011. 11. 27.


  抱腹絶倒 (포복절도)


 


                  
                 楊書房의 致富
          
          
            大監의 凶計를 물리친 이야기
          옛날 평안도(平安道) 어느 조그만 고을에 정대헌(鄭大憲)이라는
          토반(土班)이 살고 있었는데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제법 적
          지않고 더욱이 글귀나 알아 보는 터이어서 이웃 사람들이 이 사
          람을 가리켜 정대감(鄭大監)이라고 불러 왔었다.  이 정대감댁 머
          슴으로 양극대(楊克大)라는 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근본이 없는
          상놈의 집에서 태어나 무식은 할망정 영리하기가 짝이 없는 위인
          이었다.
            정대감이 다 늙어빠진 처지에 점잖게 여생을 보낼 생각을 하였
          더라면 별일이 없었을 것을 먹을 녹량이 충분하고 몸이 편하고보
          니 자연 생각나는 것이 부질없는 생각 뿐이라, 이 고을에 얼굴이
          반반한 여자라면 논마지기나, 얼마간 떼어주고는 사오다시피 하
          여 데려다 소실을 만든 여자가 자그만치 열명이나 되었건만, 예
          나 지금이나 욕심은 한이 없는 모양이어서 하필 자기집 머슴 양
          서방의 처 옥분(玉粉)을 빼앗아 볼 욕심을 품게 된 것이 결과로
          는 해괴망측한 꼴을 보게 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옥분은 얼굴이 유달리 아름다웠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몸 맵시
          가 과연 여자다워서 조석으로 눈에 뜨일 째마다 끓어 오르는 욕
          정을 참을 길이 없어 주야로 생각하는 것이 옥분을 손아귀에 널
          (넣을) 궁리였다.
            함박눈이 내려붓고 모질게 추운 어떤날 이른 새벽 정대감은 기
          침하시기가 무섭게 머슴 양서방을 불러 들였다.
             다른것이 아니라 내나이 육순(六旬)에 몸이 점점 허약해지는
          것 같아서 보약을 좀 다려 먹어야 하겠으니 자네는 오늘 깊은 산
          중에 찾아 들어가서 딸기 서말서되(三斗三升)를 따와야 하겠네
             네
            머슴 양서방의 공손한 대답이다.
             다행히 자네가 딸기 서말서되를 따오면 내 재산 절반을 자네
          에게 넘겨 줄 것이고 만약 따오지 못할 지경이면 자네것을 무엇
          이든지 나에게 줘야하네
             네
             그래 만약 말일세, 따오지 못할 지경이면 자네 처라도 내가
          원한다면 내놔야하네
            엉큼한 정대감이 다짐을 주는 말이다.
             네, 분부대로 하오리다
            정대감은 기뻤다.  자기의 꾀에 양서방이 넘어가는 것이 고소
          하고 고분고분 들어주는 것이 여간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아서 미
          리 생색이라도 내 볼 심정으로 노자에 쓰라고 돈 스무량(二十兩)
          을 선듯 내놓았다.  양서방은 무엇을 생각하였던지 별로 근심스
          러운 빛도 없이 돈을 받아가지고 나오다기 가기처 옥분에게 귓속
          말로 몇마디 일러주고는 험한 눈길을 떠났다.
            며칠이 지났다.
            산으로 딸기를 따러 간 양서방이 이른 새벽에 돌아 왔다.
             대감님 지금 돌아왔사옵니다
             오냐 딸기는 따왔느냐?
             딸기를 따려고 깊은 산중을 헤매었사옵더니 한 곳에 이르러
          많은 딸기가 있는것을 보았기에 막 따려고 하오니 뱀(毒蛇)이 어
          떻게나 그리 많던지 하마터면 물려 죽을번(뻔) 하였사옵니다
             뭣이?  이놈아!  동지 섣달 눈오는 겨울에 뱀이라니 웬 뱀이
          란 말이냐?
             그러하오면 동지 섣달에 딸기는 웬 딸기이오니까?
             음
            정대감의 신음소리다.  해서는 안될 말을 자기가 먼저 끄집어
          내었던 것이 큰 잘못이다.  또 사실이 그러하니 별수없는 노릇이
          다.  다만 오랫동안을 두고 머리를 짜서 꾸며낸 자기의 꾀가 허
          사로 돌아 간것이 분하였다.  돈 스무량도 새삼스러이 아까운 생
          각이 들었다.  그렇다고해서 이것으로 단념할 정대감은 물론 아
          니었다.
            
            죽음을 면하고 집을 얻은 이야기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돌아 왔다.  정대감의 맏아들 현상
          (賢相)이 서울로 과거(科擧)를 보러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나귀
          에다가 책과 돈을 싣고, 양서방이 도련님을 모시고 서울을 다녀
          오게 되었는데 아들 현상이 막 떠나려고 할 때에 정대감은 아들
          을 조용히 불러 이렇게 타일렀다.
             양서방이 아무리 생각해도, 내 비위에 거슬려 한 집에같이 살
          수 없으니 네가 양서방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 가다가 큰 물에 넣
          어서 없애버려라.  그래야 내가 마음을 놓고 살겠다
             아버님 말씀대로 하오리다
            이렇게 부자지간에 앙큼한 언약이 이루어진 줄은 꿈에도 모르
          고 양서방은 오래동안 마누라와 헤어지는 것이 섭섭한 것은 고사
          하고 화려하고 찬란한 서울을 구경하게 되는 것이 기뻐서 마누라
          옥분의 눈물어린 작별인사도 받는둥 마는둥 총총히 길을 떠났다.
            서울길은 과연 멀었다.  정대감의 아들 현상의 머리에는 과거
          를 보는 것 보다 아버지의 분부대로 어떻게 하면 양서방을 죽여
          없앨 것인가가 큰 고통거리여서 같이 며칠을 두고 걷는 동안에도
          말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서방은 눈에 보이는 산천 정
          경이 하나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어서 여간 마음이 상쾌하
          지가 않았다.
            이윽고 안주(安州) 청천강(淸川江) 변에 이르렀다.  강을 건너
          안주 읍내에 들어가서 주막(旅館)을 정하더라도 해가 서산을 넘
          지 않을것을 주인대감 아들 현상은 경치가 좋으니 어쩌니 하고,
          굳이 강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자는 것이다.  아직 봄이라고 하
          나 야반에는 몸에 스며드는 찬 바람을 참기 어려울 것인데 현상
          이 굳이 고집하는데는 양서방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저녁 요기도 하지 못하여서 시장하기가 한이 없었으나 푸른 물
          이 세차게 흐르는 언덕에서 하늘에 총총히 뜬 별들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지내는 것도 뜻 깊은 일인 것같아서 양서방은 별로 불
          평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상도련님은 나귀를 언덕위 버드나
          무에 매어놓고 책과 돈을 언덕위에다 놓게 하고 자기는 머리를
          책과 돈이 있는 쪽에 두고, 발을 물흐르는 쪽에 향하여 세로 누
          운후에 양서방은 도련님의 발밑에서 자되 물흐르는 방향과 같이
          가로 누워 자라는 것이다.  양서방이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이 무
          슨 곡절이 있는듯 해서 도련님이 시키는대로 누워서 곤히 잠드는
          척 하였다.  얼마를 지난 후에 양서방은 조용히 일어나서 도련님
          의 머리위에 놓여 있는 책과 돈꾸러미를 자기가 누워자던 도련님
          발밑에 바싹 다겨놓고(당겨놓고), 자기는 도련님 머리위에 가만히
          드러 눕고 동정을 살피고 있노라니까 아니나 다를가(다를까) 코
          를 골며 자던 도련님은
             음!
          하고 기지개를 하는 척 하면서 자기 발밑에 있는 것을 두발로 힘
          껏 차버렸다.
             첨벙!
            무엇이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다.  다시 조용해지고 고요치
          못한 밤이 흘러가 버렸다.  아침이 되었다.
            눈을 부시시 뜨고 일어난 도련님은 있어야 할 책과 돈이 없어
          진 것에 놀랐고, 의당 죽어 없어야 할 양서방이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래 황급히 양서방을 깨워 일으키는 것이다.
             여보게, 양서방, 일어나게.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응?
             무었이오니까?
            잠꼬대같은 양서방의 퉁명스러운 대답이다.
             돈과 책 말일세.  돈과 책이 없단 말일세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양서방은
             간밤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귀중한 책과 돈을 언덕위에 놓
          아 두면 도둑을 맞을 염려가 있기에 도련님 발밑에 갖다 놓았었
          는데, 도련님이 잠결에 그만 물속에 차넣은 모양인가 봅니다
            분한 일이다.  책이 없으면 과거를 보기 전에 무엇으로 공부할
          것이며 서울이 아직 수백리이니 돈없이 어찌 갈 것이냐.  한심하
          였다.  그렇다고 해서 양서방을 나무랠 수는 없어서 현상은 나귀
          를 타고 안주읍내로 힘없이 들어갔다.
            간 밤에도 요기를 못하였으니 사람이나 짐승이나 허깃증을 참
          기 어려웠다.  현상이 가만히 생각하니 주머니에 든 돈이 몇푼
          안되는데 양서방과 같이 아침 요기를 할 수도 없고, 또 귀중한
          책과 돈을 잃게하여서 미운생각으로 라도 밥을 먹여주고 싶지도
          않아서 주막집이 건너다 보이는 어느 골목에서 문득 발을 멈추고
          양서방에게 하는 말이
             여보게 내 지금 읍내 어느 친구를 잠시 만나고 올 것이니 자
          네는 이곳에서 나귀 고삐를 꼭 붙들고 기다리고 있되 눈을 꼭 감
          고 있어라
            눈을 꼭 감고 있으라는 것은 선비된 처지에 혼자만 밥을 사먹
          는 것이 계면쩍어서 이렇게 한 것이다.
             네
            양서방은 나귀 고삐를 한손에 꼭 붙들고 눈을 꼭 감았다.  현
          상은 안심이 된다는 듯이 주막집을 향해 걸어갔다.
            양서방이 눈을 살그머니 떠 보니, 도련님이 혼자서 주막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옳지 됐다.  나도 생각이 있다
            고삐를 붙들고 사방을 휘돌아보고 있노라니까 마침 점잖은 노
          인 한분이 지나가는 것이다.
             여보슈 노인장!
             왜 그러슈?
            노인은 의아스러운 눈치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저는 평안도 사람으로 서울에 가는 도중에 노자가 떨어져 할
          수없이 이 나귀를 파는 것이니 아주 싼값으로 사가시오
             얼마에 팔겠소?
             열량(十兩)만 주시오
            노인은 생각하니 그 나귀가 아무리 해도 스무량짜리는 되는 것
          인데, 아주 반값으로 팔겠다고 하니 에라 좋아라 하고 선듯 내놓
          았다.
             그런데 노인장 이 나귀의 고삐를 한뼘만큼만 짤라 주시오
             그건 무엇에 쓰시려우?
             팔기가 아까워서 그럽네다
            과연 애석한 것같았다.  그러나 고삐쯤이야 짧으면 새것으로
          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노인은 허리춤에서 참칼을 꺼내어 나귀
          고삐를 한뼘만큼만 짤라서 양서방을 주고는 나귀를 끌고 가버렸
          다.  양서방은 돈 열량을 허리춤에 간직하고는 한뼘되는 나귀 고
          삐를 손에 쥐고 아까 모양으로 눈을 감고 서 있노라니까 과연 도
          련님은 홍조가 된 얼굴로 주막집을 나와 이쪽으로 향해 걸어 오
          는 것이었다.
             아니, 여보게 나귀?
             여기 있읍니다
            양서방은 눈을 감은채 고삐를 쥔 손을 내밀었다.
             아니 나귀가 없단말이야!
             여기 있지 않습니까?
            여전히 고삐를 쥔 손을 내흔드는 것이다.
             눈을 뜨고 똑똑히 봐!
            소리를 왈칵 질렀다.  그제야 눈을 뜬 양서방은 자못 놀라는듯
          이
             제길할 어떤 못된 놈이 고삐만 짜르고 나귀를 훔쳐 갔군요.  
          도련님이 공연히 눈을 감고 있으라니까 이렇게 된 것이지--- .  
          그것 참!
            현상은 생각하니 기가 막히었다.  분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
          건만 당장 죽여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서울까지 동행할
          수도 없을 뿐더러 같이 있다가는 또 무슨 화를 당할지 알 수 없
          어서 그냥 집으로 돌려 보내기로 하였다.
             네 이놈--- 당장 물고를 내 버릴 것이로되 초로같은 인생을
          가엾이 여겨 이대로 돌려 보내는 것이니, 너는 이길로 곧 집으로
          내려가거라
             그러나 도련님 혼자서 어찌 서울로 가시렵니까?
             내 걱정은 말아라
            현상은, 양서방을 먼저 돌려 보내게 된 사연을 적어 부친께 전
          하려고 지필을 꺼내 쓰려다 문득 생각하니, 양서방이 이것을 가
          지고 무슨 조작을 할지 알수 없으므로 잠시 생각한 끝에
             네 이놈!  저고리를 벗고 뒤로 돌아 서거라
             에
            양서방은 저고리를 벗고 돌아 섰다.  현상은 붓에 먹을 찍어
          양서방의 등에 이렇게 썼다.
            전략
            이놈으로 인해서 잃지 않을 책과 돈을 잃고, 잃지 않을 나귀를
          잃었사오니 집에 돌아가는 즉시로 죽여 버리시옵소서---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거든 곧 대감을 뵈옵고 네 등에 쓴 이 글을 보여
          드려라.  알겠느냐---  
             염려 마십시요
            이리하여 현상은 서울길로 떠나고 양서방은 집을 향하여 떠났
          다.  서울 구경을 못한 것이 원통하였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자기 등에 쓴 글이 궁금하였다.  자기
          를 칭찬하는 글이 아님은 뻔한 노릇이고,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기는 안되겠기에 글이나 알아보는 사람이 혹 행인중에 있지 않을
          가 하고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고 있노라니까 저편 쪽으로부터 대
          사(僧) 한분이 걸어 오는 것이 보였다.
             대사님.  청이 하나 있읍니다
             무슨 청인지 말씀하시지요
             이것 좀 봐주십시오
            양서방은 웃저고리를 벗고 등을 보였다.
             여사 여사(如此 如此) 하옵니다
             그러면 돈 닷냥(五兩)을 부처님께 바칠 것이니 그 글을 지우
          시고, 제가 부르는 대로 고쳐 써 주십시오
             그리 하옵지요
             대사가 먹과 붓을 준비하니, 양서방은
             전략 양서방으로 인해서 잃을 책과 돈을 얻었으며 잃을 나귀
          를 얻었으니 집에 돌아가는 즉시로, 기와집 한채와, 논밭을 주어
          잘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써 주십시오
             그렇게 쓰겠읍니다
            양서방은 돈 닷량을 대사에게 주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
          아왔다.
             대감님 이것 좀 보십시오
            다짜고짜로, 저고리를 벗고 등을 내밀었다.
             아니 네가, 왜 먼저 돌아와서 이게 무슨 짓을--- 등에 글을
          썼군!  뭣이?  잃을 책과 돈을 얻고, 나귀를 얻고 응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다.  의당 죽었으리라고 믿어서 일간 옥분
          을 소실로 맞아들이려는 터에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
          다.  그러나 그 공이 적지 않으니 아들의 말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양서방은 큰 기와집에서 받은 논밭을 가지고 알뜰하
          게 살게 되었던 것이다.
          
            大監父子에게 復讐한 이야기
            이해 여름에 서울 갔던 현상은 낙방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보
          니 길옆에 큰 기와집이 생겼는데 내용을 알아본즉 이리저리 하다
          는 것이다.  더 참을 수 없었음인지 부친께 여쭙고, 힘깨나 쓰는,
          하인을 시켜 양서방을 잡아다가 오라줄로 꽁꽁 묶고 세겹으로 된
          무명자루(袋)에다가 넣고, 다시 그 주둥이를 힘껏 묶어 꼼짝 못하
          게 한 후에, 앞산 밑 큰연못에 내버리게 하였다.
            양서방은 꼼짝할 수없이 죽을 판이었다.  앞산밑 연못가에 이
          르러 양서방을 넌(넣은) 자루를 내려놓고 하인 한사람이 자기 동
          료에게 하는 말이
             여보게 사실 말이지, 양서방이야 무슨 죄가 있나, 다 이것이
          대감님의 부질없는 장난이지 뭔가.  대감님댁 도련님이 시키는
          일이니 거역할 수 없이 이곳까지 메고 왔네마는 참아(차마) 물속
          에 던질수야 있나? 그러니 저 버드나무에 매어 달아놓고 가세
             자네 말이 옳네, 그렇게 하세
            두 하인이 자루를 연못가 버드나무가지에 매달았다.
             고맙네
            양서방의 말이다.  그러나 살아 나갈 길이 막연하였다.  마누라
          가 보고 싶었다.  눈물이 양볼을 적시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여
          서든지 살아나가야 하겠다고, 이렇게 저렇게, 골돌히(골똘히) 생
          각하고 있는데 웬 사람하나가 버드나무 밑으로 지나가는데 지팡
          이 소리가 나고, 발자국 소리가 고르지 못한 것이 필시 장님인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되는 것이 있어 큰 목소리로
             네눈 깜깜, 내눈 번뜩
             네눈 깜깜, 내눈 번뜩
            이렇게 염불 외우듯 외이는 것이었다.  지나가던 장님이 가만
          히 생각하니
            (네눈 깜깜이고, 내눈 번뜩이라, 이게 무슨 소리인고?  가만있
          자, 하여간 물어보리라)
             여보시오
            장님이 소리쳤다.  양서방은 사뭇 귀찮다는 듯이
             왜 그러시오?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오?
             눈뜨고 있소
             댁에서도 장님이요?
             그렇소
             나도 좀 눈뜨게 해주시오
             안되오, 초가삼간을 팔아서 이것을 사가지고 이 속에 들어앉
          아 이 주문(呪文)을 외우는 것이 벌써 아흐레째가 되어 이제는
          눈이 다 떠서 앞을 환히 보게쯤 되게 된 터에 댁이 누구시라고
          눈을 뜨게 해드리겠소.  원 미이친놈 다 봤군!
             네눈 깜깜, 내눈 번뜩
            양서방이 예기했던 바와 같았다.  그래 신바람이 나서 더 큰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한편 장님은 몸이 달았다.  천
          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인 것이다.
             여보슈, 보아하니, 젊은 친구같은데 당신의 눈이 다 뜨거든 그
          보물을 나에게 팔 수 없소?  쉰량(五十兩)을 드리리다
             그렇게 하슈.  나도 눈이 뜨면 이것이 소용없소
            양서방은 장님의 힘을 빌어 나무가지에서 자기가 든 자루를 풀
          어 땅에 내려놓게 하고, 다시 주둥이를 풀고, 자기 몸에 묶인 오
          라줄을 풀게 하여 자유스럽게 된 후 불쌍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장님을 묶고 자루에 넣어 그 이상한 주문을 외우게 한 후 다시
          버드나무 가지에 매어달고는
             여보 장님.  쉰량은 이 다음에 주시오
             고맙소이다
            다시없는 적선인 것같이 말하고는 양서방은 이웃 고을 주막으
          로 향하였다.
            며칠후의 일이다.  죽은 줄로 알았던 양서방이 정대감 앞에 나
          와서 큰 절을 세번 하고는
             대감님의 높으신 은헤는 소인 백골 난망이옵니다.  대감님께
          서 염려하신 덕분으로 용궁(龍宮)에서 많은 대접을 받고 왔사옵
          니다
             아니 그것이 사실이란 말이냐?
             사실이옵니다
             그러면 어째서 벌써 돌아왔느냐?
             다름이 아니오라, 소인이 대감님의 높으신 은혜를 입어온 위
          에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용궁을 구경하고 또 많은 궁인들의 극진
          한 대접을 받기에는 너무 죄송스러워서 대감님과 도련님을 모셔
          가려고 왔읍니다
             기특하다.  언제 용궁에 가는 것이 좋겠나?
             내일 묘시에 가기로 궁인과 약속 했사옵니다
             그래라
             그러나 다시없는, 기회이오니 온 가족을 다 모시고 가고자 하
          옵니다
             그러지 그래
             용궁에 가본즉 이 세상에 없는 물건이 없사온데, 다만 맷돌이
          없사옵니다.  그러하오니 맷돌을 많이 마련하시어서 식구 하나가
          한짝씩 지고 가심이 좋을듯 하옵니다
             그러지 어디 빈 손으로 찾아갈 수 있겠나?
            정대감은 모든 하인을 시켜, 이날 안으로 어른 아이들은 막론
          하고 한짝씩 지고 갈 수 있도록 크고 작은 것을 만들게 하였다.
            이튿날 아침 일찌기 정대감댁 가족과 양서방 내외는 각기 맷돌
          한짝씩을 지고 묘시에 늦지않도록 열을 지어 앞산 밑 연못가에
          이르렀다.
             도련님께서 먼저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뒤따라 오십시오
            첨벙 하고 현상이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등에 돌로 만든 맷
          돌을 지었으니, 물 속에 뛰어 들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이다.
             저것 보십시오.  하도 좋으시니까 도련님께서 뛰어가시지 않
          습니까
             그런가보다
             어서 들어 가십시오
            대감님이 맷돌을 진채 물속에 뛰어 들었다.  며느리, 손자, 손
          녀 할것 없이 모조리 뛰어들었다.
            모두 물귀신이 된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중
          에 양서방의 처 옥분의 차례다.  옥분이 막 뛰어들려고 하니
             여보 당신 정신있소, 없소?
          하고 붙잡았다.  옥분을 데리고 집에 돌아온 양서방은 정대감 소
          실에게 각기 얼마씩을 주어서 제집에 돌려보내고 자기자신이 이
          집 주인 대감이 되어서 일생을 아무 군색없이 살았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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